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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가는 낡은 배…16세 선장의 인생 항해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환상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동반한다. 세네갈 사람들에게 이탈리아는 꿈의 나라다. 그러나 그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할 뿐, 영화의 주인공 세이두처럼 아프리카 사막을 건너고 지중해를 항해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꿈이 공포로 뒤바뀌어 지옥을 경험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희망의 부스러기를 주워 담는 이야기다.     2008년 범죄 르포소설을 영화화한 ‘고모라’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탈리아의 마테오가로네의 신작 ‘이오 카피타노’는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했고 다가오는 제96회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이탈리아의 출품작으로 최종 후보에 올라있다.     16세의 세이두(Seydou Sarr)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외곽에서 홀어머니, 그리고 여러 명의 여동생들과 함께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세이두와 그의 사촌 무사는 부모 몰래 이탈리아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학교 대신 공사판에 나가 노동을 하며 돈을 모은다. 이탈리아로 가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돕겠다는 생각, 그리고 힙합 스타가 되어 백인들로부터 싸인 공세를 받는 꿈을 꾸면서.     세이두의 어머니는 떠나겠다는 아들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그러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두 소년을 자제시키지 못한다. 세이두와 무사는 마법사의 중보로 조상들의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가짜 여권을 구입하고 픽업트럭의 뒷자리에 올라 아프리카 대륙을 달린다. 수천 마일 죽음의 여정이 시작된다.   말리 군인들에게 린치를 당한 일행은 이제부터 걸어서 사막을 건너야 한다.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다. 리비아에 도착하지만, 무사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세이두는 납치되어 온갖 고문 끝에 벽돌공 노예로 팔린다.     세이두와 무사는 공사판에서 극적으로 재회한다. 심한 외상을 입은 무사를 돌보며 세이두는 이탈리아행 배를 타기 위해 돈을 모은다. 뱃삯을 지불하고 나서야 브로커들은 방향키를 한번도 잡아 본 적이 없는 세이두에게 선장의 책임을 떠맡긴다. 황당해할 틈도 없이 세이두는 수백명의 밀입국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낡은 배를 몰고 시칠리아를 향한 항해에 나선다.     영화는 공포의 현실 세계와 황홀한 영적 세계가 뒤섞여 있는 가운데 죽어가는 생명들 앞에 인간의 마지막 도리를 포기하지 않는 세이두의 영웅적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불허의 반전이 이어진다. 아프리카 사막과 망망대해 지중해에 흩어진 희망의 부스러기들을 붙잡고 배를 몰고 가는 세이두의 외침 “나는 선장이다(Io Capitano)!” 그는 끝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시칠리아 선장 인생 항해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주인공 세이두

2024-02-23

요리…음식에 사랑을 쓰다

프랑스의 2024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 근대 베트남의 어두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1993)와 ‘시클로’(1995)를 연출했던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흥의 최근작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랑과 음식은 하나다. 음식에 대한 욕구, 배고픔은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행위와 사랑을 하나로 ‘조리’하는 영화 ‘테이스트 오브 싱스’는 19세기 미식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그의 연인 유진(쥘리에트 비노슈)의 사랑 이야기다.     도댕이 주최하는 미식가 클럽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방 풍경을 스케치하는 38분 동안의 오프닝신. 음식을 만들고 맛보고 평가하는 이 초반부의 오랜 조리 시퀀스는, 음식을 만드는 행위도 예술일 수 있음을 입증(?) 해 보인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관객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 나도 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면.   그러나 관객은 곧 영화가 후각 자극의 이면에 ‘관계’를 숨기고 있음을 감지한다. 화면을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관찰하면서 이 영화가 음식들의 층 위에서 말하고자 함이 사랑이란 걸 알게 된다.     도댕과 유진은 20년을 함께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도댕이 유진에게 구혼을 하는 장면이 있고 유진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들만의 사랑의 밀어로 둘의 관계를 이어간다. 도댕은 가끔씩 기절하는 유진의 건강이 우려스럽다.     주방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휴식을 취하는 밤, 그녀를 찾아오는 그의 방문. 유진은 그와 함께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의 방문을 기다리는 지금의 설레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한다. 도댕과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모든 행복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언제나 일관되게 유지되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이다.   영화는 사랑에 관한 프랑스적 감성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시적 표현들은 언제나 사랑을 노래한다. 그리고 도댕과 유진은 그 사랑을 요리로 표현한다.     도댕이 오직 유진만을 위해 요리하는 후반부의 한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그 어떤 말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트란 안 흥 감독은 은유와 상징을 영화 언어로 사용하는 감독이다. 정물의 정직함을 믿는 그는 종종 설명 없이 이미지로만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의 후반부. 유진은 가고 없다. 그녀가 없는 주방 공간에 도댕과 유진이 나누었던 달콤한 대화들이 메아리쳐 온다. 진정한 요리의 미학은 음식의 맛에 있지 않다.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음식 사랑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영화 언어 지난해 칸영화제

2024-02-09

빔 벤더스가 속삭인다 “행복은 디테일에 있다니까”

일본의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WimWenders)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70여년간 아카데미상에 참여해온 일본이 외국인 감독의 작품을 선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7년 ‘서브머전스’ 발표 이후 벤더스의 6년 만의 장편 복귀작으로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에게 그의 생애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안겨줬다.     ‘퍼펙트 데이즈’는 ‘악마는 디테일에 강하다’라는 말의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영화이다. 관객은 단절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행복의 디테일’을 찾아가는 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을 함께 경험한다. 가족을 보고 싶어하는 그리움, 가여운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슬픈 사연에 접하면서 도심 한구석에 숨겨진 세심한 인간애에 감동을 받게 된다.     중년의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깔끔하게 정리된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그는 매일 동일한 의식에 지배되는 외톨이다. ‘도쿄 화장실’이라고 적힌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시부야의 공중화장실들을 청소하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그는 집과 직장을 오가며 카세트테이프로 록음악을 듣고 틈틈이 나무들을 사진 찍으며 문고판 책을 읽으면서 잠이 든다. 그러나 이처럼 매일 반복되는 그의 평범한 일상은 하루하루가 특별하고 귀중하다.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히라야마의 작은 것에 대한 관심을 관찰하는 데 긴 시간이 할애된다. 사소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그러나 그가 고수하는 ‘습관’들이 히라야마의 진정한 즐거움일까.       소원해진 여동생의 딸 니코의 깜짝 방문으로 조카와 함께 지내는 며칠간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가장 커다란 ‘사건’이다. 히라야마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흘러나오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지속적이고 조용히 세계와 교감을 나눈다. 미소와 눈물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그의 얼굴에서 즐거움과 고통, 희망과 두려움을 본다. 한 중년 남자의 일상과 개인사의 단면을 통해 가슴에 전해지는 뭉클한 감동은 보석처럼 빛나는 야쿠쇼의 연기 때문이다. 연민에 젖어 있는 그의 무언의 연기에서 우리는 결국 히랴야마의 고독과 맞닥뜨린다.     침착하고 고요한, 달콤하고 슬픈 삶의 후회가 얽혀 있는 이야기. 항상 같으면서도 다른 중년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며 잊혀진 존재의 고독한 영혼이 그 어디에선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디테일 행복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가운데 히라야마 화장실 청소부

2024-02-09

도난 사건이 터지자 드러나는 학교의 정체

터키계 이민자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일케르 차탁(Ilker Catak) 감독의 작품이다. 독일의 2023년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 학교를 배경으로 한 몰입도 높은 인물 탐구와 정의의 개념에 대한 팽팽하고 치밀한 고찰.       도난 사건이 빈번한 학교에 새로 부임한 신임 교사 칼라(리오니 베네쉬). 동료 교사들, 학부모, 학생들 모두 그녀의 헌신적 태도가 왠지 거슬린다. 그러던 중 소지품 검사 뒤에 자기 반 학생 오스카(레너드 스테트니쉬)가 증거도 없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오스카는 터키계 이민 가정의 아이다. 칼라는 교무실에서 동료 교사의 부정행위를 목격하면서 진상 규명에 나선다.   칼라는 노트북 카메라를 켜 둔 채 지갑을 옷에 두고 수업에 들어간다. 예상대로 지갑의 돈이 사라지고 돈을 가져간 사람의 블라우스가 찍힌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다. 그러나 더 큰 시련과 공포가 그녀를 조여오면서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묘하고 갑갑한 균형이 지속된다. 무언가 그녀를 위협하는 세력에 학교 전체가 휘말린다.     영화는 누구도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범인을 특정하지만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범인인 듯 보이는 자가 드러나지만 얼굴은 가려져 있다. 냉철한 해부나 비판도 없다. 갈수록 모호해지는 불확실의 실체, 혐의가 은폐되고 사실은 모호한 언어로 가려지고, 소문이 난무한다. 한 아이의 희생으로 권력자의 치부를 감추어야 하는 상황, 칼라는 결국 역부족에 부딪힌다. 모든 정의가 부정당한다.   홀로 싸우는 칼라의 가슴 아픈 여정, 무너지는 그녀의 신념과 좌절에 분노와 연민이 더해진다. 칼라의 고통, 무력감, 죄책감을 표현하는 베네쉬와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학생 오스카 역의 스테트니쉬의 무언의 눈빛 연기가 스릴과 긴장감을 유지하며 영화를 끌고 간다.     차탁 감독은 인간관계의 지형도를 색다른 방식으로 그려낸다. 학교는 권력을 지키기 위한 기관일 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상적 가치와 진실은 발로 차버리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채 삐걱삐걱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영화다.  김정 영화평론가도난 학교 학교 전체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학생 오스카

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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